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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피터 뵐러

피터 뵐러

존 웨슬리가 영국에 도착하던 날인 1738년 2월1일에 피터 뵐러(Peter Boehler, 1712~1775) 목사도 독일에서 출발하여 영국에 도착했습니다.

피터 뵐러는 모라비안의 청년지도자로서 1712년 12월 31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공부를 마치고 1731년 독일의 가장 오래된 대학중의 하나인 예나대학(University of Jena)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피터 뵐러의 아버지는 피터 뵐러가 약학을 공부하기를 바랬었지만 그는 신학 공부에 빠져들어갔습니다. 당시 예나대학에는 유명한 신학자들이 많이 있었는데 특히 진젠도르프(Nicolaus Ludwig Zinzendorf) 백작과 Walch 교수를 만나서 그들이 주장한 경건주의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대학 졸업후 진젠도르프백작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다, 진젠도르프백작이 주교로 서품된 직후인 1737년 12월 15일, 피터 뵐러는 진젠도르프백작으로 부터 안수를 받은 첫번째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바로 다음 해인 1738년 미국으로 선교를 떠나기 위해 영국에 잠시 들렀었는데 바로 그 무렵인 2월 7일, 미국에서 막 도착한 존 웨슬리를 만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당시 피터 뵐러는 26세의 청년이었습니다.

존 웨슬리는 그 동안 동경해 오던 모라비아교도의 지도자였던 피터 뵐러를 처음 만난 후 부터 떠나는 날 까지 가능한 한 자주 만나서 교제하려고 했습니다. 동생인 찰스와 자신이 알고 있던 많은 사람들을 소개시켜주며 신앙에 대한 토론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당시 35세였던 존 웨슬리는 자기보다 나이도 10살이나 어리고 학문의 경력도 낮은 피터 뵐러에게 겸손한 마음으로 참된 신앙에 대해 배우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영어를 하지 못했던 피터 뵐러에게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1738년 2월 17일, 존 웨슬리와 피터 뵐러가 옥스포드로 함께 여행을 하며 서로의 신앙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존 웨슬리가 선한 일, 즉 기도, 예배, 금식, 성만찬 등을 통하여 죄사함을 받고, 그 후 전도, 구제, 봉사, 선교를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해야 하며, 그 것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하는 것을 좀처럼 버리지 못하자 피터 뵐러는 “나의 형제여, 나의 형제여, 제발 그 생각을 머리속에서 제거해버리시오.”라며 거의 꾸짓다시피 소리를 지르며, 하나님에 의해서 믿음이 확증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사함을 받았으며 그 죄사함은 단번에 이루어진다고 믿는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존 웨슬리는 이 말을 듣고 기분이 나빴을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 말에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며 그의 말이 성경말씀에 부합하는지 연구하였습니다.

1738년 3월 4일, 존 웨슬리는 불현듯 자신이 믿음이 없으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설교를 할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어 피터 뵐러에게 의견을 구했습니다. 그러자 피터 뵐러는 “믿음을 갖게 될 때 까지 믿음에 대해 설교하고 그리고 믿음을 얻은 다음에는 바로 그 믿음을 설교하면 될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감추지 마십시오.”라며 권면해주어 3월 6일 부터 다시 믿음에 대한 설교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1738년 5월 4일, 피터 뵐러는 미국의 선교를 위해 사바나로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모라비아교도들의 부흥에 노력하였고, 또 흑인노예들의 교육과 영혼구원에 큰 관심을 가지고 많은 시간과 열정으로 그 일에 헌신하였습니다. 1740년, 모라비아교도들이 사바나에서 추방을 당했을 때, 이 고통스러운 기간 동안 피터 뵐러는 평화와 희망을 설교하며 모라비아교도들을 위로하고 지도하며 펜실바니아로 이주하여 두 도시를 (베들레헴과 나사렛) 세웠습니다. 그리고 영국에 돌아가서 미국이민자들을 새로 모아 베들레헴에 이주시키고 정착시켰으며, 다시 영국에 돌아와 모라비아교의 감독(superintendent and bishop, 1747~53)으로 활동하였고, 다시 미국으로 가서 1764년까지 모라비아교도들의 정착지를 세우면서 활동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죽을 때(1775년 4월 27일)까지 영국에서 활동을 하였습니다.

* 피터 뵐러는, 중간에 신학적인 문제의 차이로 존 웨슬리와 신학적 결별을 하였으나, 죽을때까지 존 웨슬리 형제와 긴밀한 친분관계를 계속 유지하였습니다.

* “만입이 내게 있으면 (O for a thousand tongues to sing)”이라는 찬송은 1739년 찰스 웨슬리가 피터 뵐러와 함께한 저녁식사 중, 피터 뵐러가 고백한 “내게 만개의 혀가 있다면 그 혀 모두를 가지고 하나님을 찬송하겠다” 라는 말에 감동이 되어 작사 작곡한 찬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