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구용 목사(뉴저지연합교회 원로목사)의 글입니다.
개체교회 목회를 40년이 넘도록 하면서, 늘 아쉬워했던 점은 교인들이 전도를 못한다는 사실이다. 늘 수동적인 교인으로만 머물러 있는 것이다. 주일이 되면 예배에 참석하고, 교회 행사가 있으면 봉사하고, 헌금하고, 기도하는 종교적인 삶을 사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는 교인들로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부터인지 나의 목회에서 군중을 모으려고 하는 목회를 더는 하지 말고, 예수님의 제자를 만드는 목회를 해야겠다는 깨달음을 갖게 되었다. 평신도들로 하여금 능동적인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소위 말하는 “제자 훈련”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교인들을 전도자로 변화시키려는 이 과제를 나는 이 모든 훈련에서도 찾지 못했음을 고백하게 된다. 교제를 따라, 그리고 계획에 따라 훈련을 시키며, 사명자반까지 만들어 1년씩이나 매주에 한 번씩 만나서 배우고, 나누고, 가르쳤는데도, 평신도들이 아직도 전도자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현재 13명의 사명자들이 훈련 받고 있는데, 한 둘을 제외하고는 전도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첫째로 안 믿는 자들을 만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겨우 한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사정과 형편이 시간을 낼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이다. 이 방법 저 방법을 다 써보아도 도무지 전도 하기가 정말 힘들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내가 깨닫게 되는 것은 이것이었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사람이 변하는 것”이었다. 내가 성령님의 능력에 사로잡혀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아무리 훈련을 받아도, 그 사람을 통해서는 잃어버린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훈련 받는 13명 중에 유독이 전도가 너무 쉬운 한 사람이 생겨났다. 이 형제는 수의사인데 예수님 안에서 거듭난 사람이 되었다. 전에는 자기를 위하여 살던 사람이 이제는 남을 위하여 사는 사람으로 변했다. 우리 주님 예수님을 따라 사는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교회 생활과 훈련의 과정이 도움이 되었겠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예수님을 자기의 주인으로 모신 사건이 그 안에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가 사는 것은 자기를 위함이 아니라 자신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위해서 사는 사람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는 갈라디아서 2:20절의 말씀을 자기의 신앙으로 고백할 때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형제는 이제 자기 것이 없어졌다. 전도를 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개나 고양이를 애완 동물로 기르는 사람이 찾아오면 그는 무엇보다 먼저 예수님을 믿느냐고 묻는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손님이 오면 그는 이렇게 전도한다. “당신이 예수님을 믿으려고 교회에 나오기만 하면, 수술 공짜로 해드리겠다”고 전도한다. 그 사람은 백발백중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다. 또 이 형제는 중국 연변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동포들을 위해서 집을 열어 놓았다. 중국 동포들이 무슨 문제가 있으면 이 수의사 형제를 찾아온다. 그는 자기의 시간, 돈, 가정까지 모두 하나님의 것으로 내 놓았다. 이 형제의 부인도 함께 전도 사역에 열심이다. 우리는 전도인이 되려고 하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아계시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사건이 먼저 일어나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변하지 않고는 전도할 수 없다. 은퇴를 하면서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 것이 바로 이 사실이다. 존재(being)가 문제다. 무엇을 얼마나 많이 하느냐 하는 행동(doing)이 문제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사람을 새롭게 바꾸어 놓으시고, 새로워진 그 사람을 통해서 새로운 일을 하신다.
그러면 이런 질문이 생기게 된다. 어떻게 하면 성도들로 하여금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할 수 있을까? 그 대답은 간단하다. 목사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변한 삶을 살아서 평신도들에게 본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도들이 변할 수 있는 길은 말 잘하는 목사의 가르침이 아니다. 강한 훈련도 아니다. 성도들이 감격하여 따를 수 있는 삶을 사는 목사의 본을 보여주는 것이 평신도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게 하는 길이다. 목사가 먼저 사명자로 살 때에 평신도가 사명자의 삶을 살게 된다.
예수님께서 산상설교를 마치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랐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 있게 가르치셨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읽으면서, 나는 “예수님의 권위가 어디에서부터 나올 수 있었는가?”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 질문은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예수님과 율법학자들 간에 무엇이 달라서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권위를 느끼게 되었느냐 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 속에서 나는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다시 묵상해 보았다. 예수님의 비유 설교와 삶의 모습 속에서, 나는 예수님께서 권위가 없는 자로 사셨음을 깨닫게 되었다. 예수님의 권위는 그 분께서 권위 없는 자로 사셨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참 권위 있는 자로 육박해 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 가장 권위 없는 인간이 되어서 오신, 도성인신(Incarnation) 되신 사건이 바로 권위 없는 자가 되신 모습이다. 예수님의 그와 같은 삶이 사람들에게 영향(impact)을 미친 것이다. 예수님의 권위는 말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가장 권위가 없이 사셨던 삶에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일치하여 사셨던 예수님의 존재(being) 그 자체가 사람들에게 권위자로 임하셨던 것이다. 이러한 삶이 다른 사람을 살리는 능력이었던 것이다.그러므로, 우리의 목회도 사람을 변화시키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내 안에 예수님의 생명이 없기 때문에, 남을 살릴 수 있는 능력도 없는 것이다. 주님 안에서 내가 먼저 생명을 얻어야 생명을 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후배 목사님들에게 말하고 싶다. 목사 자신이 먼저 참 권위자가 되어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참 권위자가 되기 위해서 자신이 먼저 하나님과 사람 앞에 진실하고, 권위를 부리지 않는 삶을 살 때 사람들은 변할 것이라고. 한 사람만이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변하면, 그 사람을 통해서 전도의 역사는 일어나게 될 것이다. 개체교회의 목회를 40년이 넘도록 한 지금, 지나간 시간들을 돌아볼 때에, 다만 한 사람만이라도 “나는 목사님을 닮고 싶습니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목회는 성공한 목회라고 정의하고 싶다.
또한 앞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이 땅에 두시는 동안 최선을 다해 하려고 하는 일은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나의 삶을 통해서, 한 사람에게라도 더 “주님 안에서 변화 받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도와주는 일”이다. 이 일을 위해서 모든 창조적인 방법을 찾으며 실천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한다.
*** 나눔을 위한 질문 ***
1. 내가 전도를 위해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2. 내가 한 전도의 경험을 나눠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