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 웨슬리의 미국 선교는 미국의 인디언들과 백인 정착자 모두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사바나에 도착해서 그곳의 인디안 추장인 토모치치 등을 만나서 전도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토모치치는 스페인인과 프랑스인들의 교리의 진지한 설명없이 세례만을 강조하는 선교활동에 불만이 많았었기 때문에 존 웨슬리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성인 및 아이들의 교육사업에 대한 것만 허락하고 선교사업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몇차례 인디언 부족마을로 선교여행을 떠나려고 했으나, 오글도프 총독은 그 지역의 프랑스인들로 부터 방해 또는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이유와 목사가 부족한 사바나를 떠나는 것이 좋지 않다며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존 웨슬리는 신속하게 그리고 정열적으로 선교활동을 추진해 나갔습니다. 하루에 두번씩 예배를 드렸고 매주 성찬식을 가졌습니다. 주일예배는 주민들이 가지고있던 본래의 신앙에 따라 나누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매주 주일과 수요일 그리고 금요일 저녁마다 만나는 신도회를 결성하였고, 신도들의 가정을 일일이 방문하기 위해 하루에 3시간을 따로 정해놓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신발과 양말을 신지 못하고 맨발로 학교에 오는 가난한 학생들을 부유한 학생들이 놀리는 것을 막기 위해 스스로 맨발로 학교에 가기도 했습니다. 또 한때는 동생인 찰스가 프레데리카에서 너무 힘들어 하자 서로 교구를 바꿔서 목회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사반나지역의 주민들은 얼마 안되는 부채 때문에 감옥생활을 하다가 석방되어 미국에 오게된 착실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새로운 곳에서 한 탕 해보려는 사람들과 본래 나태하여 특별한 목적없이 식민지에 흘러 들어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목회 활동을 하기가 쉬운 곳은 아니었던 것이었습니다.
오글도프 총독의 비서 명목으로 오게 된 동생 찰스도 사바나교구의 사제로 임명되어 프레데리카라는 마을을 책임지게 되었지만, 엄격한 신앙생활로 인한 주민들과의 마찰과 몇몇 주민들이 고의로 만든 함정과 오글도프 장군의 오해로 인한 마찰 그리고 잦은 질병 등으로 고생하다가 미국에 도착한지 6개월도 되지 않은 7월 25일 거의 실려가다시피하여 영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 프레데리카는, 사바나에서 남쪽으로 75마일 정도 떨어진 해안가 늪지대로서, 스페인의 공격을 막기위한 오글도프 장군의 최전방 요새였습니다.
** 오글도프 총독은 프레데리카에서 주일에는 낚시와 새잡는 것을 금지하였는데, 호킨스라는 사람이 이를 어기고 주일에 총을 쏘다가 갇히게 되었습니다. 호킨스의 부인은 이를 찰스 웨슬리의 탓으로 돌리고 찰스를 궁지에 빠트릴 방법을 모색하다가, 찰스에게는 오글도프 총독과 자신이 불륜의 관계에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오글도프 총독에게는 찰스가 이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있다고 함으로써 오글도프와 찰스의 신뢰 관계를 단절시켰습니다.